재미있는 이야기

옛날 프로레스링 시리즈 4 - "프로레스링은 쇼다" 편

低山 2019. 12. 7. 06:26



옛날 프로레스링 시리즈 4 - "프로레스링은 쇼다" 편

 

 

 

 1965년 8월21일에 극동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전(戰)을 개최하여 성황리에 마치고 챔피언 벨트를 획득한 김일 선수는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 유명선수들을 초청하여 규모가 더 크고 화려한 국제대회를 국내에 유치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출국하였습니다.

 

 일본에 입국하여 여러 번의 시합을 갖은 김일 선수는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던 노르웨이의 칼 칼슨 선수, 스웨덴의 바이킹 한센 선수 등과 터키 선수, 오쿠마 선수 등 여러 명의 일본 선수들을 한국에 초청하는데 성공했습니다.

 1965년 11월 25일부터 4일간 장충체육관에서 한국의 김일, 장영철, 천규덕, 우기환, 박송남, 박성모 등 모든 선수와 일본의 오쿠마등 여러 선수, 노르웨이의 칼 칼슨, 스웨덴의 바이킹 한센, 이름이 생각 안 나는 터키 선수 등이 출전하는 5개국 국제친선(國際親善) 프로레스링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시합이 시작되기 전, 외국선수들이 입국(入國)할 때부터 온 국민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수들이 탄 무개(無蓋) 찦차가 카 퍼레이드를 벌이는데 150Kg이 넘는 거구(巨軀)의 외국 선수들 덩치도 덩치이지만 칼 칼슨 선수의 ’가죽 모자’와 바이킹 한센 선수의 뿔 달린 ’바이킹 모자’의 기괴(奇怪)한 모습은 장안(長安)의 화제(話題)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25일, 26일, 27일 사흘간은 국내 선수들간의 오픈게임과 우리나라 선수들과 국제선수들간의 태그매치 등 여러 시합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졌습니다. 장충체육관에는 시합을 직접 보려는 관객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TV는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생중계(生中繼)를 했습니다.

 

 TV가 드믈던 그 시절 도시동네의 만화가게와 시골동네의 이장(里長)님 댁 마당에 놓인 흑백(黑白) TV 앞은 작은 극장(劇場)이 되었습니다. "관속에 누어 있던 시신(屍身)도 관 뚜껑을 열고 나와 프로레스링 중계를 보았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4일간 벌어진 5개국 국제 프로레스링 대회 마지막날 11월 28일, 이번 대회의 챔피언을 가리는 토나멘트가 온 국민의 관심 속에 벌어졌습니다. 1회전은 한국의 장영철 선수와 일본의 오쿠마 선수의 대결이었습니다.

 

  한국의 에이스인 장영철 선수가 일본의 오프닝 선수인 오쿠마 선수를 쉽게 이기고 무난하게 2회전에 진출하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장영철은 오쿠마에게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1:1의 상황에서 오쿠마 선수가 장영철 선수에게 새우꺽기(보스턴 크랩)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새우꺽기 기술이란 한 선수가 다른 선수의 두발을 자신의 양팔로 껴안고 상대방을 뒤집어 허리를 꺽는 기술로 극심한 허리의 통증을 이기지 못해 당하는 선수의 항복(降服: 기브 업)을 받아낼 수 있는 일종의 필살기(必殺技)입니다.

 

 한국 지존(至尊)의 체면이 걸린 장영철 선수는 섣불리 항복도 못하고 허리가 90도 이상 꺽인채 비명(悲鳴)만 질러댔습니다. 링사이드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장영철 선수의 제자(弟子)겸 후배(後輩)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자 일제히 링 위로 뛰어올라 오꾸마 선수의 머리를 병과 의자로 내려치는 난투극(亂鬪劇)을 벌였습니다.

 

  이 소동으로 경기는 중단되었고, 경비를 맡았던 경찰관들이 개입하고서야 사태는 진정되었습니다. 잠시 후 아직 링 위에 있던 장영철 선수는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다음에는 김일 선수에게 도전하겠다."라고 절규(絶叫) 했습니다.

 

 장영철 선수와 폭행에 가담한 제자들은 경찰에 연행(連行)되고 5개국 국제 프로레스링대회의 나머지 시합은 속개(續開)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시합들은 ’김 빠진 맥주’ 마냥 싱겁게 이어져 김일 선수가 이번 대회의 챔피언이 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틑날 조간신문(朝刊新聞)에는 "장영철, ’프로레스링은 쇼’다 라고 인정" 이라는 대문짝 만한 기사(記事)가 떴습니다. 그러나 장영철 선수는 오늘날까지 자신이 절대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장영철 선수가 경찰서에서 조사 받을 때 "오쿠마가 규칙에 어긋난 공격을 하기에 제지한 것이다."라고 주장하자 경찰이 "레스링 규칙에 어긋난 기술? 그게 뭐냐?"라고 다그치자 장영철이 " 보스턴 크랩(새우꺽기)은 90도 이상 꺽으면 반칙이다."라고 대답하니 경찰이 "그런 법이 어디 있냐? 그거 다 쇼 아니냐?"라고 밀어 붙여 다음날 아침 신문에 "프로레스링은 쇼." 라는 기사가 났다고 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장영철 선수의 제자인 고릴라 이석윤 선수 등 3명의 선수를 즉심(卽審)에 회부하고, 현역(現役)이었던 김두만 선수를 군(軍) 수사기관에 이첩(移牒)하는 것으로 법적(法的)으로는 일단락(一段落)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건의 후유증은 의외로 더 커져, 국제적인 레스링 실력과 흥행(興行) 능력을 고루 갖춘 김일 선수의 귀국으로 중흥(中興)의 계기(契機)를 맞이했던 한국 프로레스링 계가 양분(兩分)되어 그 후 수년간 서로 자신의 집단이 정통(正統)임을 주장하며 주로 지방흥행(地方興行)으로 명맥(命脈)을 유지했습니다.

 

 

 

옛날 프로레스링 시리즈 5로  계솟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 인터넷

 



Top Of The World - Carpente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