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이야기

옛날 프로레스링 시리즈 1 - 장영철 편

低山 2019. 12. 3. 10:10



옛날 프로레스링 시리즈  1 - 장영철 편

 

 1950년대 중반 전쟁의 아픔이 채 가시기 전, 피난지 항도(港都) 부산에서 한국 프로레스링이 자생(自生)의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장영철을 비롯한 몇 명의 젊은이들이 전문적인 프로레스링 코치도 없이 주한미군의 AFKN-TV와 현해탄을 건너오는 일본 TV의 프로레스링 경기 중계를 보고 프로레스링 흉내를 내면서 여러가지 기술을 익혔습니다.

 

 아마츄어 레스링과 권투, 유도, 당수를 하던 이들은 전혀 새로운 운동인 프로레스링을 열심히 연습하여, 1957년 초 부산 자갈치시장 내에 있는 국제종합체육관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프로레스링 시합을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출전 선수는 장영철 선수와 전진주 선수였습니다.

 

 1950년대 후반, 서울로 자리를 옮긴 프로레스링 선수들은 변두리에 도장을 열고 선수확보와 후진양성을 하여 빈번히 프로레스링 대회를 개최하고, 지방순회 시합도 자주 갖게 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정식으로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로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레스링 시합을 자주 볼 수 있게 되니 자연히 시합을 알리는 포스타도 동네 골목이나 전신주에 나붙게 되었는데, 포스타에는 구렛나루를 기른 한국 프로레스링의 지존(至尊) 장영철 선수를 중심으로 하여 당수의 천규덕, 백곰 우기환, 고릴라 이석윤, 사자 조경수, 거인 박송남, 박성모 등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당시 포스타의 특이한 점은 팬티차림으로 폼을 잡고 있는 우람한 체구의 선수 사진 밑에 선수들의 몸무게를 적어 놓았는데, 요즘처럼 몇 Kg이 아니라 몇 관으로 표시했다는 것입니다. 주니어 헤비급에 해당되는 선수들은 보통 23관(84,5Kg)이었고 헤비급 선수들은 26,7관(92~96Kg), 거인 박송남, 박성모 선수가 32관(120Kg)정도 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헤비급 선수로는 장영철, 천규덕, 우기환, 조민영, 송학수, 거인 박송남, 박성모 등 그리 많지않은 선수들이 있었고, 주니어 헤비급 선수로는 이석윤, 홍무웅, 옥태진, 전진주, 조경수, 안명길, 오문환, 김두만, 등 좀 더 많은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대머리 송학수씨는 시합 중 장파열의 부상을 입어 선수 생활은 못하고 심판을 보았습니다. 홍무웅 선수 등 몇 명은 후에 몸무게가 늘어 헤비급 선수가 되었습니다. 거인 박송남, 박성모 선수의 키가 195~197Cm로 요즘 민속씨름 최홍만 선수의 키 218Cm보다는 훨씬 작았습니다.

 

 장영철 선수는 특유의 구렛나루와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로, 기술도 다양하여 ’목감아 치기’와 ’드롭킥’ ’훌라잉 헤드 시저스’ 등의 화려한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초창기 한국 프로레스링계의 대부요 지존이었습니다.  

 

 1963년 2월 장충체육관이 개관하고 TV 중계도 시작하게 되자 ’고기가 물 만나듯’ 프로레스링은 활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일류 선수들은 아니지만 외국선수들을 초청하여 국제시합도 갖게되었고, 옥경자 선수 등의 여자 선수들도 등장하여 여자 프로레스링 시합도 심심치않게 열렸습니다. 이때가 한국 프로레스링의 ’제 1의 전성기’였습니다.

 

 장충체육관이 개관하기 전에는 권투나 레스링 등의 큰 시합은 주로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의 배구 경기장이거나 수영장에서 특설 링을 만들어 놓고 거행했습니다. 1962년 가을, 서울운동장 배구장에서 한국 프로레스링 쥬니어헤비급 챔피언 타이틀매치가 토나멘트로 열렸는데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도 참관했었습니다. 저는 흥미진진했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먼저 장영철 선수와 신인 레슬러 2명과의 1대 2 경기가 있었는데 장영철 선수가 2명의 선수를 국민학생(초등학생)들 데리고 놀 듯이 놀다가 일방적으로 승리했습니다.

 

 두 번째 게임은 당수 5단의 공군상사 출신 천규덕 선수와 팔뚝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무두질’이 특기인 맷집 좋은 백곰 우기환 선수와의 시합이었습니다. 심판은 역시 대머리 아저씨 송학수씨가 보았습니다. 접전 끝에 ’당수(태권도) 치기’가 특기인 천규덕 선수가 폴승을 거두었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한국 프로레스링 주니어헤비급 타이틀 전이 시작되었습니다. 8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토나멘트로 진행되는데, 출전한 8명 선수의 면면을 살펴보면, 고릴라 이석윤, 타이거 안명길, 비호 전진주, 사자 조경수, 왕서방 옥태진, 약관 20세의 당수 3단 홍무웅, 유도 3단 오문환, 현역 해병 장위수 선수였습니다.

 

 불꽃 튀는 열전 끝에 고릴라 이석윤 선수가 쥬니어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습니다.
인상에 남는 경기장면은 이석윤 선수가 노련하게 상대선수의 다리를 잡아 넘어뜨리는 것과 안명길과 오문환의 경기 중 두 선수가 동시에 몸을 날려 연속으로 3번의 드롭킥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현역 해병용사인 장위수 선수는 연습부족으로 아깝게도 중도에 기권했습니다.

 

 1965년 6월 세계적인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제자로 미국과 일본 무대에서 크게 활약하던 김일 선수가 8년만에 귀국하였습니다. 김일 선수의 귀국은 그때까지 부동(不動)의 에이스인 장영철 선수를 중심으로 태동(胎動)하여 그런대로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던 한국 프로레스링 계에 엄청난 변화와 돌풍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옛날 프로레스링 시리즈  2로 계속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 인터넷



 

Top Of The World - Carpen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