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활동, 성지순례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 순례기

低山 2018. 9. 21. 04:09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 순례기

 

 

                                               2000년 6월 24~25일

 


 저는 18년 전(2000년) 6월 25일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역 광장에서 춘천교구가 주관한 2천년 대희년과 분단 50주년을 기념하는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에 박종태(프란치스꼬) 형제님과 함께 서울대교구 대표로서 ’평화의 제단쌓기’ 흙을 담은 배낭을 지고 순례할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2000년 대희년 전국 대표자회의에서 선정한 4개의 전국대회 중 하나이면서 김수환 추기경님과 14명의 주교님들이 참석하시고 전국 14개 교구와 해외동포, 실향민, 탈북주민 등 6,625명이 참석한 중요하고 의미있는 대회인 것입니다.

 

 이날 전국대회에서는 평화의 종 타종, 빛·소리·월정리 공연, 평화의 제단 쌓기, 대 침묵 성체기도, 밀개떡 먹기 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습니다. 특히 행사 프로그램 가운데 ’평화의 제단 쌓기’는 각 교구 대표들과 춘천교구 47개 본당대표 등 모두 250명이 각자 10Kg 씩 담아온 흙으로 이날의 화해 기원 미사제단을 쌓는 것으로서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흙은 희생과 죽음, 생명을 상징합니다. 분단의 상징 월정리역을 향한 오늘의 순례의 발걸음은 남북이 서로의 잘못을 회개하는 발걸음이며, 북녘동포와 화해하는 발걸음이며, 서로가 두 이레(두 주일)된 강아지만큼 이라도 눈을 뜨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간구하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흠숭의 발걸음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춘천교구에서 보내주신 배낭에 본당 화단에서 10Kg 씩 흙을 정성스럽게 퍼담아 짊어지고 6월 24일 오후 8시 30분에 춘천교구에서 보내주신 버스 2대에 분승하여 출발하는 본당교우들 보다 먼저 오전 10시 30분에 신부님께 출발인사를 드리고 이번 대회의 주제이면서 오늘의 비표인 ’하나되게 하소서’ (요한 17,11) 라고 쓰여진 메달을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승용차 편으로 월정리 역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의정부를 지나 12시 쯤에 점심식사를 하고 집합 장소인 철원 성당에 오후 3시 경에 도착하였습니다. 철원성당은 서울의 성당과는 달리 넓은 부지에 밤나무 숲이 우거진 부러운 환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흙배낭을 진 각 교구 대표들이 승용차를 타고 속속 도착하여 이곳에 타고 온 승용차를 주차시키고 버스편으로 월정리 역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월정리역은 민통선만 넘으면 바로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우리를 태운 버스는 민통선을 통과하여 멀리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 백마고지가 보이는 철원 노동당사 건물을 지나서도 자꾸 자꾸 갔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오늘의 대회장 월정리역 광장은 바로 철책선과 맞닿아 있는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2000년 6월 25일 전국 14개교구 6,625명이 한자리로 만나고 기도하는 월정리역 광장(잔디밭을 포함)은 일만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은 곳입니다. 이곳에 6,625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졌습니다. 월정리역 좌우 편에는 부대 연병장이 있고 이 연병장을 당일 차량(버스150대 등)들이 주차할 수 있도록 군에서 배려해 주었습니다. 희고 자그마한 월정리 역사 앞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간판아래 6.25당시 멈춰버린 객차와 화물 열차가 폐고철이 되어 길게 누워있어 분단의 아픔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철도가 잠시 쉬어가던 곳입니다. 경원선은 서울 원산간 227km를 연결하는 산업철도로서 철원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을 수송하는 간선철도 역할을 했습니다.  

 

 철책선에는 전망대와 휴게소가 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가니 500원 주화를 넣고 보는 망원경이 있어 바라보니 지호지간에 북한군의 초소와 북한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남북 동포들은 지척에서도 왕래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에 의해 그어진 군사 분계선 철조망 너머로 철새 떼들은 자유롭게 날아가고 날아오며 우리 대신 이산의 고통을 울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철의 삼각지 철원 벌판에서 6.25 격전지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철야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후 11시 경부터 전국 각 교구의 성직자, 수도자, 교우들을 태운 150여대의 버스가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와 있던 우리 ’평화의 제단 쌓기’ 봉사자들은 자기 본당 식구들이 도착할 때마다 마치 오래 헤어져있던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것 같이 환호성을 지르고 반가워했습니다. 우리 본당 식구들은 128번 째로 도착하여 서울대교구 좌석에 자리잡았습니다.

 

 역삼동 성당 교우 2분과 저희 둘, 4명의 서울대교구 대표는 전국에서 모인 다른 250명의 ’평화의 제단 쌓기’대표단과 함께 제단 앞 맨 앞자리에 앉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25일 00시 민족화합과 일치를 위한 로사리오 기도를 시작으로 화해와 평화의 새날을 여는 역사적이고 감격적인 전국대회가 하느님께 봉헌되었습니다.

 

 02시 어둠 속에서 공연된 전쟁 상황 다큐멘터리 현장극 ’빛·소리·월정리’ 공연이 있었습니다. 레이저와 조명, 멀티미디어 음향등이 고막을 찢는 듯한 포성과 산천을 집어 삼킬듯한 불길을 묘사합니다. 50년 전 6.25의 새벽 그 날을 연상시킵니다. "월정리 끊어진 철길, 환갑을 더 넘은 머리 하얀 노인 손에 , 지금도 원산행 기차표가 있어 어머니를 부른다" 라는 서막 시로 시작된 6.25 현장체험 공연은 마치 50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듯 했습니다 간간이 ’단장의 미아리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등 당시의 대중가요가 흘러나와 참석자들을 향수에 젖게 하고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평화의 제단 쌓기’ 봉사자들에게는 이 공연을 다른 귀빈들과 함께 바로 앞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다른 참석자들은 멀티미디어 음향과 멀티비젼의 화면으로 보았습니다.

 

 6.25 현장체험 공연이 끝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지름 8m 원형단상에 북녘 땅을 향한 ’평화의 제단 쌓기’가 있었습니다. 전국 250여 곳에서 퍼온 흙으로 제단을 쌓는 동안 국립국악원의 대금합주 ’만파식적’ 이 연주되고 구상 시인의 초토의 시, 진혼의 시, 화해의 시가 낭송되었습니다. 흙은 희생, 죽음, 생명을 상징합니다. 박종태 (프란치스꼬) 형제와 저는 14명 씩 이루어진 남성대표들 중 7번 째로 단상에 올라가 정성스럽고 경건하게 저희 본당 흙을 제단에 쌓았습니다. 이어서 여성대표들 2명씩 올라가 사제들에게 흙 포대를 전해 주면 사제들이 받아 엄숙하게 쌓았고 다 쌓은 후 그 위에 민족화합의 새 날, 새 삶과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 제단을 꾸몄습니다. ’평화의 제단 쌓기’가 끝나고 춘천교구 50여 곳을 순례한 성체가 거양되었습니다. 이어 지난 봄 동해안(고성, 강릉, 삼척) 산불 때 타버린 소나무와 역시 이때 불에 맞은 북한산 주목나무로 엮어 만든 남북이 하나로 묶여진 십가가를 세우고 모든 것은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고 한줄기 빛만이 성체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대침묵 가운데 성체 기도가 봉헌되었습니다.

 

 암흑에서 생명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새벽 4시 미사가 시작 되기 직전 참석자 대표들 [분단교구 대표, 교회목자 대표, 백성 섬김이 대표, 평화 지킴이 대표, 실향동포 대표, 북녘에 뿌리를 둔 수도회 대표, 6월 25일 생 대표, 백성의 길라잡이 대표(하늘길, 땅길, 뱃길, 철길)] 은 50년 전 전쟁이 발발 했던 시각에 맞춰 평화의 종을 타종했습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이사 2,4) 성서 말씀에 따라 한국전쟁 당시 사용된 포탄과 총알 탄피를 녹여 만든 평화의 종이 50차례 타종될 때마다 월정리 역 광장에 모인 6천여 신자들은 성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로 응답했습니다. 크기 1.7m 무게 1t 인 평화의 종은 기도의 날 행사 후 월정리 역사 앞 종각에 영구히 안치됩니다.

 

 곧 이어 민족화합의 새날, 새 삶을 기원하는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의 미사에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님을 비롯 14명의 주교단과 수십 명의 사제단이 입장하면서 ’민족의 역사와 전쟁에 대하여,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통회’하는 참회예절이 거행되었습니다. 오늘의 미사에서 화합과 일치의 잔치음식으로 철원, 갈말, 김화본당의 신자들이 우리 밀가루와 밀기울을 반반 섞어 만든 6,250명 분의 밀개떡이 봉헌되었습니다. 각교구 대표들이 밀개떡을 봉헌했는데 서울 대교구 대표로는  박종태 형제님이 봉헌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강론을 통해 "적어도 야외에서의 철야기도는 평생 처음이다"라고 하시며 "대희년을 맞아 진심으로 남북이 화해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북녘 형제들에게 나눔을 실천하여 하느님 안에서 일치하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비롯한 14명의 주교님들과 6,000여 명의 신자들은 미사 끝 무렵 먼동이 트는 북녘 하늘과 땅을 향해 십자가를 그으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북녘 동포들에게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북녘 땅과 북녘 동포들에게 강복하소서" 라고 강복했습니다. 이 순간 민족의 하나됨을 기원하며 십자가 강복을 그은 침례자들은 숙연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순서인 회상, 화합, 일치의 잔치가 이어졌습니다. 여기에서 남녘 14개 교구와 북녘 땅 (3개시, 9개도) 의 결연이 있었습니다. 이 결연을 통하여 우리의 북녘 동포돕기를 더 구체적으로 다짐하자는 것입니다. 막연히 또는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북녘동포를 돕는 우리의 사랑을, 통일 후 북녘 땅을 복구하는 우리의 헌신을, 북녘 땅 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다짐하는 약속입니다. 우리 서울 대교구는 평양 특별시, 남포 직할시, 평안 남도, 평안 북도와 자매 결연을 맺었습니다. 자매 결연을 맺는 순간 각 교구 신자들은 자매 결연된 북녘 시,도를 힘차게 세 번씩 외쳐 불렀습니다. 세 개씩 나누어진 6.25 음식인 밀개떡을 먹는 잔치를 끝으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밀개떡 나누기는 6.25 의 굶주림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선인들의 아픔을 오늘의 사람들도 함께 나누고 또한 북녘 동포를 비롯하여 굶주리고 고통받는 세계의 이웃들과도 함께 나누는 민족화합의 새 날, 새 삶 -하나되게 하소서-를 이루어 내려는 것입니다.

 

 저는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에 서울대교구 대표로 ’평화의 제단쌓기’흙을 넣은 배낭을 짊어지고 순례의 길을 떠나게 해 주신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보살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이렇게 성스럽고 뜻깊은 대회를 준비하고 주관하신 춘천교구의 장익 주교님과 김현준 신부님을 비롯한 사제단과 교우님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비를 내릴 듯 말 듯 하시다가도 대회가 끝날 때까지 비를 안 내리신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또한 대회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천주교의 성직자와 수도자, 교우들과 철책선을 지키고 있는 우리 6사단 장병들과 함께 철책선 너머의 북한 군인들과 북녘 동포들도 비록 그들의 몸은 못 오지만 마음은 넘어와 ’빛· 소리·월정리’ 공연을 보고 평화의 종을 타종하고, 미사에 참례하고, 밀개떡을 나누어 먹었다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모습이 멀지 않은 장래에 꿈이 아니라 현실로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으며 민족화해와 일치, 통일을 위하여 열심히 하느님께 기도해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사진 출처 - 인터넷

 



↑ 2016년 2월 10일 촬영.. 한탄강 

 




             

            강 건너 봄이 오듯     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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