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시리즈

중국 고대왕조의 흥청망청

低山 2020. 8. 25. 08:03

중국 고대왕조의 흥청망청

 

                                                      2003년 10월 29일

 

중국 고대(古代) 역사는 하(夏), 은(殷), 주(周) 3대 왕조(王朝)로부터 비롯했습니다. 3대 왕조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공부해 보면, 하나같이 왕조 말기(末期)에 가서는 폭군(暴君)과 요부(妖婦)들이 주지육림(酒池肉林)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흥청망청 하다가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역사적 교훈(敎訓)을 얻을 수 있습니다.

 

 

* * * *

 

 

먼저,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은 자신이 정복(征服)한 오랑캐인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공물(供物)로 바친 미인(美人) 매희(妹喜)에게 반해서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궁전을 짓고 옥(玉)으로 만든 침대에서 일락(逸樂)에 빠졌습니다. 걸왕은 매희의 소망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한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에게 오색찬란(五色燦爛)한 옷을 입혀 날마다 무악(舞樂)을 베풀었습니다.

 

무악에 싫증이 난 매희의 요구에 따라 궁정(宮庭) 한 모퉁이에 큰 연못을 판 다음 바닥에 새하얀 모래를 깔고 향기로운 미주(美酒: 품질 좋은 술)를 가득 채우고, 연못(池) 둘레에는 고기(肉)로 동산을 쌓고 포육(脯肉: 양념하여 말린고기)으로 숲(林)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의 유래(由來)입니다.

 

걸왕과 매희는 그 연못에 호화선(豪華船)을 띄우고 연못 둘레에서 춤을 추던 3,000명의 궁녀(宮女)들이 신호(信號)의 북이 울리면 일제히 연못의 미주(美酒)를 마시고, 숲을 이룬 포육(脯肉)을 탐식(貪食)하는 광경을 구경하며 희희낙락(嬉嬉諾諾)했다고 역사(歷史)는 전합니다.

 

이같은 흥청망청의 나날이 계속되자 국력(國力)은 피폐(疲弊)하고 백성의 원성(怨聲)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이리하여 걸왕은 하(夏)나라에 복속(服屬)했던 은(殷)나라의 탕왕에게 주벌(誅伐) 당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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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은(殷)나라의 28대 군주(君主)인 주왕(紂王)은 자신이 정벌(征伐)한 오랑캐 나라에서 공물(供物)로 바친 희대(稀代)의 독부(毒婦) 달기에게 마음을 사로잡혀 그녀의 끝없는 욕망(慾望)을 만족 시켜주기 위해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았습니다.

 

주왕 또한 국력(國力)을 기울여 호화찬란(豪華燦爛)한 궁궐(宮闕)을 짓고 미주(美酒)와 포육(脯肉)으로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었습니다. 흥청망청하는 주왕과 달기의 광태(狂態)를 보다못해 충신(忠臣)들이 간(諫)하면, 주왕은 도리어 군왕(君王)의 행동을 비방(誹謗)하는 불충자(不忠者)로 몰아 가차없이 포락지형(?烙之刑)에 처하곤 했습니다.

 

포락지형이란 기름칠한 구리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罪人)을 그 위로 걷게하여 미끄러 떨어져 죽게하는 일종(一種)의 잔인무도(殘忍無道)한 사형(死刑) 방법인데, 미끄러운 구리기둥에서 숯불 속으로 떨어져 타죽는 희생자(犧牲者)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모습까지도 달기의 음욕(淫慾)을 돋우는 재료(材料)가 되었습니다.

 

이같이 폭군(暴君)과 독부(毒婦)로 악명(惡名)을 떨치던 주왕과 달기도 결국 하(夏)나라 걸왕의 전철(前轍)을 밟아 주(周)나라 시조(始祖)인 무왕(武王)에게 멸망(滅亡) 당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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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서주(西周)의 마지막 왕(王)인 유왕(幽王)의 총희(寵姬)로서 유왕이 포국(褒國)을 토벌(討伐)했을 때 포국에서 공물(供物)로 바쳤으므로 포사로 이름지어진 미인(美人)이 있습니다.

 

왕의 총애(寵愛)를 받아 아들 백복(伯腹)을 낳았는데, 그녀는 이상하게도 절대로 웃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유왕은 포사를 웃기려고 온갖 꾀를 생각한 끝에 외적(外敵)의 침입(侵入)도 없는데 위급(危急)을 알리는 봉화(烽火)를 올려 제후(諸侯)들을 집합(集合) 시켰습니다. 제후들이 급히 달려왔으나 아무 일도 없었으므로 멍하니들 서 있자, 그 것을 본 포사는 비로소 웃었다고 합니다.

 

뒤에 유왕은 왕비(王妃)와 태자(太子)를 폐하고, 포사와 백복을 왕비와 태자로 삼았습니다. 전왕비(前王妃)의 아버지 신후는 이에 격분하여 BC771년 견융(犬戎) 등 오랑캐를 이끌고 쳐들어와 유왕을 공격했습니다.

 

 

유왕은 다시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들은 한 사람도 모이지 않았습니다.

유왕(幽王)과 태자(太子)는 살해(殺害)되어 서주(西周)는 멸망(滅亡)하였고,

요녀(妖女) 포사는 납치(拉致)되었다고 합니다.

 

 

 

 

- 끝 -

 

 

 

중국 고대의 갑골문(甲骨文)

 

이미지 출처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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