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한 이야기

설렁탕과 추탕

低山 2019. 10. 21. 09:01


설렁탕과 추탕 

 

 

옛날 조선시대 동대문 밖(지금의 신설동, 안암동, 제기동, 용두동, 청량리 일대)은 크고 작은 냇물이 흐르는 평야지대와 슾지로서 비옥한 논과 미나리깡 사이로 드문드문 인가(人家)가 있는 평화로운 농촌이었습니다. 도성(都城)과 가까운 곳에 논밭이 많으니 태조 임금님 때부터 동대문 밖 제기동(지금의 종암 초등학교 앞)에 풍년 들기를 기원하던 선농단(先農壇)을 만들고 경칩 뒤의 첫 번째 해일(亥日)에 제사를 지낸 뒤 왕이 친히 논 밭을 가는 ’모범’을 백성들에게 보였습니다. 

 

 선농단에서 제사가 끝나면 소를 잡아 큰 가마솥에 넣어 국을 끓이고, 쌀과 기장으로 밥을 지어 농부들과 구경나온 노인들에게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맛있게 먹는 설렁탕이라는 이름은 선농단에서 끓인 국이라 하여 선농탕(先農湯)이 되었고 다시 설롱탕이 되었다가 설렁탕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후 1896년 11월에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장례를 치른 고종황제께서 청량리에 있는 황후의 능 홍릉(洪陵)으로 자주 행차하니, 그 행차 때마다 가마를 탄 많은 신하들을 거느림으로써 그 경비가 만만치 않차 미국인 콜부란 등의 건의를 받아 들여 전차 선로를 부설하고 전차를 운행하게 되었습니다. 전차의 운행으로 임금님의 행차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이용하게 되니 그 인기와 편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동대문밖 신설동 일대에 경마장이 생겨 전차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자, 그때까지는 삼삼오오(三三五五) 친한 사람들끼리 시냇물과 논두렁에서 천렵삼아 미꾸라지를 잡아 미꾸라지국(추탕 鰍湯)을 끓여 먹으며 즐겼었는데, 자연발생적으로 추탕을 끓여 손님들에게 파는 집이 생겼으니 그 이름도 정겨운 신설동 경마장 옆의 형제추탕과 용두동의 곰보추탕의 유래입니다. 

 

 1930년대 초에 생겨 대를 이어 성업 중인 두 추탕집 가운데 곰보추탕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고 형제추탕은 미아삼거리로 옮겨 다시 이름을 얻고 있습니다. 두 추탕집이 동대문 밖 미꾸라지 산지에서 영업을 시작했는가 하면 같은 시기에 용금옥은 성문(城門)안 번화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째로 넣는 것이 특색인 서울식 추탕은 그래서 추어탕이라 하지 않고 추탕이라고만 합니다. 서울식 추탕은 얼큰하고 구수하며 비린내가 없는 담백한 맛입니다. 이 맛에 길들은 사람들은 미꾸라지를 갈아 넣고 끓여 내는 추어탕의 맛은 맛으로도 치지 않습니다. 1970년대 초 남북적십자회담 때 북측 대표로 참석했던 남한 출신의 박성철 부주석은 "용금옥의 추탕맛이 아직도 예전 같습니까?"하고 우리측 대표에게 물었다고 하는 일화(逸話)가 있습니다.

 

 이렇듯 영양많고 구수한 추탕의 원재료인 미꾸라지는 한자로는 추어(鰍漁) 또는 이추(泥鰍)라 하며 몸길이 약 20Cm의 잉어과의 민물고기입니다. 주로 진흙 속의 유기물을 먹고 사는데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를 특히 좋아합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하루에 1,000마리의 장구벌레를 먹어 치우는 살아있는 살충제(殺蟲劑) 라고 합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시냇물을 흐린다."라는 좋지 않은 뜻의 속담이 있지만 미꾸라지가 먹이를 구하려고 시냇물 바닥을 꿈틀거리며 파고 들어 물을 흐리게 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흐려졋던 시냇물은 얼마 후면 다시 맑아질 것이고, 영양이 풍부한 개천 바닥을 휘저어 놓아 다른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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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태종 때, 고려 개경에 있던 시전(市廛)을 그대로 본떠 한성 종로(鐘路)를 중심으로 중앙 간선도로 좌,우에 관설상점가(官設商店街)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점포를 대여, 상업에 종사하게 하였으니 그 것을 육의전(六矣廛)이라고 합니다. 정부에서는 그들로부터 점포세, 상세(商稅)를 받는 대신 사상인(私商人), 즉 난전(亂廛)을 단속하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을 부여하니 이들은 막대한 부(富)를 축적하여 경제적, 사회적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고종27년(1890) 청나라와 일본 상인들의 침투로 상품 독점권을 완전히 잃고 ,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값싼 상품의 쇄도로 육의전은 몰락하였습니다. 고종31년(1894) 갑오개혁 이후에는 누구나 자유로운 상업행위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후 전차가 운행되고 동대문안에 전차 차량기지와 발전소가 생기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자 배고개(梨峴 종로5가~4가 사이)에 자연발생적으로 상설 장터가 생겼으니 이를 ’배우개 장’이라 불렀습니다. ’배고개’의 발음이 ’배오개’로 변했다가 다시 ’배우개’로 변하여 ’배우개 장’으로 불리우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동대문시장의 전신인 배우개 장은 그야말로 종합시장으로 싸전(곡물상), 면포전(포목상), 지전(종이가게), 옹기전, 유기전, 어물전 등 수 많은 상점과 생활용품을 사러 도처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대며 활기에 넘쳐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동, 서, 남해안에서 잡힌 각종 생선을 진열해 놓고 손님을 맞고 있는 어물전에 아무리 가지런히 잘 진열하려 해도 볼품없는 물건이 있었으니 "꼴뚜기’란 놈 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무데기 지어놓은 꼴뚜기를 보고 어떤 여자 손님이 "어머! 이건--, 무슨 생선이 이렇게 못생겼어요? 오징어도 아니고 별꼴이 반쪽이야~."라고 삐쭉거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듯 어물전 망신을 시키는 못 생긴 꼴뚜기는 한자어로 골독(骨獨)이 우리말로 변하는 과정에서 꼴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주로 젓갈을 담가 먹는 꼴뚜기는 볼품없고 가치없다고 하여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속담 말고도 큰 사업에 실패하고 작은 장사를 시작한다는 뜻의 "어물전 털어먹고 꼴뚜기 장사한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만 못생기고 가치없어 보이는 꼴뚜기가 있음으로써 고등어, 조기 등 다른 생선들의 상품가치를 높여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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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조선시대 한성 사람들이 동대문 밖 시냇가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탕을 끓여 몸 보신을 하고 성안의 어물전에서 꼴뚜기를 헐값에 사서 젓갈을 담가 먹을 수가 있었으나,  생선으로 치지도 않고 먹지도 않아 웬만한 사람은 평생에 한 번이라도 듣도 보도 못한 물고기가 있었으니 갯벌에서 팔짝팔짝 뛰노는 망둥이란 놈이었습니다.

 

 망둥이는 서해안 갯벌에 가면 가장 쉽게 잡을 수 있는 물고기로, 식성이 좋아 아무 것이나 잘먹어 낚시 바늘에 비린내만 나도 무는 성질이 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고기 중 종류가 가장 많다고 하며 몸 길이 1m나 되는 큰 종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연안에 살고 1~1.5Cm인 작은 종은 필리핀의 호수에 삽니다. 망둥이 역시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아 부화뇌동(附和雷同)과 경거망동(輕擧妄動)의 뜻을 담은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이 전해 내려 옵니다.

 

 팔팔한 망둥이가 뛰어노는 생태계의 보고(寶庫) 갯벌에 대해 알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희대 자연사 박물관 연구원 최한수님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인 갯벌은 한 발자국만 떨어져도 염도(鹽度)가 달라질 정도로 환경이 변화무쌍한데다 생물의 시체가 분해된 유기물질이 영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생물들이 살고있다."고 설명합니다. 

 

 갯벌에 생물이 풍부한 것은 영양분 이외에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파도가 산소를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갯벌은 환경정화라는 중요한 기능도 수행합니다. 강을 통해 흘러온 오염물질은 여기서 정화되어 나가므로 갯벌은 ’생태계의 콩팥’으로 불리웁니다.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는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ha당 9,990달러로 매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농경지의 생태적 가치 ha당 92달러보다 1백배 이상 높은 것입니다.

 

 

 

 

 

 

 



선농제향

 

 


설렁탕

  


 

추탕




곰보추탕

 

 

 

용금옥

 

 이미지 출처 - 인터넷